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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 상세

Posted by 레빗데빗
2018. 2. 27. 15:30 카테고리 없음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 상세


게스트하우스 관리인 한정민(33)에 의한 투숙객 실종·살인 사건이 벌어진 제주시 구좌읍 쏘쏘 게스트하우스. '소등 없는 파티 게스트하우스'로 유명했던 이곳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새벽까지 웃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이웃 주민들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의 게스트하우스를 21일 찾았다. 2층짜리 단독주택 건물이 스산한 폐가처럼 버려져 있었다. 밤마다 벌였던 파티의 흔적으로 마당 한쪽에 소주병이 빼곡했다. 1000병이 훌쩍 넘어 보였다. 대문과 건물 출입문은 '출입금지'라고 쓰인 경찰 폴리스라인 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살던 사람이 급하게 이곳을 떠난 것처럼 빨래건조대에 채 걷지 못한 빨래가 그대로 널려 있었다.






실종됐던 투숙객 이모(여·26)씨는 실종 신고 다음날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 빈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쏘쏘 게스트하우스는 지난 13일 폐업 신고를 하고 문을 닫았다. 같은 날 도주 중인 한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며 공개수사가 시작됐는데 이튿날 용의자 한씨는 유서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수사 과정에서 한씨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는 여럿 발견됐지만 정작 범인이 사망하면서 사건은 애매하게 마무리됐다.

살인범으로 돌변한 인심 후했던 관리인

경찰에 따르면 부산에서 태어난 한씨는 경남 양산시에서 치킨집을 하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가게 문을 닫고 제주도로 넘어왔다. 한씨는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는 정식 고용이 아닌 일종의 체험 생활로 주인이나 관리인을 도와 청소, 빨래, 음식 준비 같은 일을 하는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한씨와 알고 지냈던 다른 게스트하우스 사장과 직원들에 따르면 한씨는 "스태프 생활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며 사나흘 만에 일을 그만두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장기 투숙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말 새로 문을 연 쏘쏘의 관리인으로 일을 시작했다. 한씨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운영을 모두 맡겨주면 수익의 70%를 주겠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한씨를 지켜본 사람들은 "사업 수완이 좋았다"고 평했다. 사건 현장이었던 구좌읍은 게스트하우스·펜션 등으로 영업하는 농어촌민박업이 도내에서 가장 많은 곳(450개, 2017년 8월 기준)으로 경쟁이 치열했다. 같은 자리에서 먼저 문을 열었던 펜션과 게스트하우스가 줄줄이 문을 닫았지만, 한씨 게스트하우스는 곧 구좌읍 인기 게스트하우스로 떠올랐다. 한씨와 친하게 지냈던 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는 "한씨는 한 달 정도 살았던 게스트하우스의 파티를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 나쁘게 말하면 표절해서 운영했고 파티 비용을 아끼지 않는 후한 곳으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태연하게 도주하던 범인은 왜 자살을 택했나

"전날 파티에서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더니 새벽에 방에 토를 해놓고 침구류 세탁비 10만원을 물어주기 싫어서 아침에 몰래 나간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피해자 이씨 가족의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씨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이 게스트하우스를 찾았을 때, 한씨는 피해자를 얌체 손님으로 몰았다. 실종 신고 사흘 전인 7일 울산에서 제주도로 혼자 2박3일 여행을 온 이씨는 첫날 쏘쏘를 찾아 다음 날 오전 1~2시쯤까지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즐겼고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이씨 행방을 묻는 경찰 질문에 한씨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곳에서 일하던 스태프 4명도 파티 이후로 이씨를 보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투숙객이 그냥 사라졌지만 한씨는 별다른 연락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소셜미디어에 게스트하우스 파티와 맛집 사진을 올리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 조사에서 경찰은 한씨에 대한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날 오후 경찰은 신원조회를 통해 한씨가 지난해 7월 게스트하우스에서 술에 취해 의식이 없던 투숙객을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행 중인 재판 외에 한씨의 전과는 절도죄 1건. 과거 일하던 주유소에서 돈을 훔친 것 외 다른 범죄 이력은 없었다.

재차 걸려온 경찰 전화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씨는 "시내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조사받으러 가겠다"고 둘러대고 오후 8시 35분 김포행 항공편을 통해 제주도를 빠져나갔다. 출발하기 전 공항면세점에서 쇼핑하고 누군가와 웃으며 통화하는 모습이 CCTV 화면에 잡혔다. 한씨가 뭍으로 도주한 다음 날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빈집에서 실종됐던 이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홀로 살던 노인이 사망한 뒤 비어 있던 집이었다. 경찰이 추정한 범행 시각은 파티가 끝났던 8일 오전 새벽. 피해자 몸에서 한씨의 타액과 지문이 발견됐다. 한씨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명확해졌다.



제주도에서 빠져나온 한씨는 가장 먼저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익을 정산해서 계좌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한씨와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수익을 3대7로 나눴는데 딱히 정해진 날짜 없이 한씨 요구가 있을 때마다 주인이 수익을 계산해 보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경찰 조사에서 "전화를 걸어온 한씨가 평소와 다른 게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짐작도 못했다"고 말했다. 주인이 전화를 받았을 때는 쏘쏘 사건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한씨는 도주에 능했다. 고향 부산과 최근까지 가게를 운영했던 양산을 피해 과거 일했던 적 있는 경기 안양시, 수원시를 도주로로 택했다. 휴대전화는 거의 켜지 않았고 이동할 때는 CCTV를 피하기 위해 주로 택시를 탔다. 안양, 수원을 거치며 경찰을 따돌리고 특별한 연고가 없던 충남 천안시로 향했다. 공개수사로 전환된 다음 날인 14일 한씨는 천안의 한 모텔에서 성매매한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씨는 왜 돌연 자살을 택했을까. 경찰 눈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알고 지낸 친구에게 안부 전화까지 걸었던 그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씨 자살은 의문투성이"라고 했다. "공개수사로 전환되면서 압박감을 느꼈겠지만 경찰 눈을 피해 태연하게 도주하던 한씨가 갑자기 자살을 택한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경찰에 체포될 경우 그동안 숨겼던 다른 죄까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도 "한씨 사망으로 수사가 어려워졌지만 드러나지 않은 비슷한 범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곪은 게 터졌다", 예견된 게스트하우스 사고

사건 이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는 비상이 걸렸다. 기존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고 예약 문의도 뚝 끊겼다. 지난 19일 광주광역시에서 제주도로 2박 3일 '혼행(혼자 하는 여행)'을 온 대학생 오모(여·22)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가 뉴스를 보고 겁이 났고 부모님도 호텔에서 지내는 게 아니면 여행을 못 보낸다고 하셔서 시내 호텔에 묵었다"고 말했다.

한라산 근처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모(38)씨는 "결국 곪았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고칠 것은 확실히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파티 문화가 나쁜 게 아니지만 무허가로 술과 음식을 팔며 유흥을 즐기는 변질된 파티 문제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제주 곳곳에는 클럽을 방불케 하는 DJ 파티를 운영하거나 24시간 소등 없이 파티를 여는 것을 무기로 여러 파티 게스트하우스가 경쟁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성비(性比) 잘 맞춰주는 게스트하우스' '헌팅하기 좋은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홈런(성관계를 뜻하는 은어) 치는 법' 등 게스트하우스를 클럽이나 나이트클럽처럼 묘사한 홍보 글이나 이용자 후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주도청과 경찰은 최근 1년 동안 성범죄, 폭행, 절도 등으로 1회 이상 경찰에 신고 접수된 게스트하우스 171곳에 대한 점검을 시작했다. 단속 첫날 '파티 참가비'를 받고 투숙객에게 술과 음식을 준 게스트하우스 6곳을 비롯해 총 9곳이 적발됐다. 안전 기준을 충족한 업소는 따로 인증해주는 제도도 도입한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행정이 현실을 뒤늦게 따라가는 처지지만 지금은 이런 조치라도 필요하다"며 "다만 행정기관이 매기는 게스트하우스 안전 등급은 실제 게스트하우스 이용자들이 느끼는 안전이나 만족도와 괴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평가에 이용자 경험을 반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